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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답사기

세종대왕의 영릉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과 해석

棟載 박정해 | 2016.06.19 14:07 | 조회 7115

세종대왕의 영릉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과 해석

여주에 자리한 세종대왕의 영릉은 조선왕조의 왕릉중에서 가장 명당이라고 인정받고 있는데, 원래는 헌·인릉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세조실록』등에 따르면 길지가 아니라는 여러 논란이 있었고, 세조 13년 세조는 신숙주와 구치관으로 하여금 영릉의 개장을 검토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때 안효례와 최호원으로 하여금 영릉의 길흉을 살피고 보고할 것을 지시하지만, 이들이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자 파직하고 의금부에 하옥하는 일이 생긴다. 예종 때에 이르러 세종의 영릉은 여주로 천장하게 되는데, 여느 명당과 마찬가지로 세종대왕의 능도 여러 의견들이 회자되고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내용이 천장하기 위해 팠을 때 시신이 썩지 않고 있었다는 것과, 이인손의 무덤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시되고 있다. 관련 기록이 많지 않아 여러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근거는 미약하고 흥미위주의 설화들이 떠돌고 있는 정도이다. 따라서 조선을 대표하는 정사기록인『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살펴본다.

영릉과 관련하여『조선왕조실록』에는 아주 명확하지만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어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간략하게 기록한 배경에는 당시 왕의 시신과 관련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불경하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나쁜 모습이었다면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세종의 영릉을 팠을 때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예종실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릉(英陵)을 파서 여니, 현궁(玄宮)은 물기가 없고, 재궁(梓宮)과 복어(服御)가 새 것과 같았다.

 

『예종실록』에는 현궁에 물기가 없었다는 점은 분명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어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재궁과 복어가 새것과 같았다’는 부분이다. 복어란 입고 있던 수의를 말하는 것인데, 전혀 썩지 않고 새것처럼 있었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옷만 새것처럼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면, 시신도 전혀 부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시신의 부패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의의 오염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1450년에 승하한 세종은 1469년 천장할 때까지 만19년 동안 전혀 부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종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있었다는 말은『예종실록』을 통해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다.

반면에 다른 의견도 제시될 수 있는데, 복어가 새것 같았다는 것은 물의 침투가 없었고, 시신이 생각보다 훨씬 깨끗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음으로 영릉이 있던 곳에 이인손의 무덤이 있었다는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을 갖고 있을까? 이 부분도 천장할 당시의 기록인『예종실록』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예종실록』에 따르면, 이인손의 묘는 이계전의 무덤 옆에 있었다고 하는데, 영릉의 터로 이계전의 묘 자리를 선택하였다는 점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천릉할 땅을 여흥 성산의 이계전의 분묘로 정하고 술자리를 베풀다.

 

그 외에도『예종실록』에는 영릉을 천장하면서 이계전의 묘를 미리 파서 물이 나오는지 여부를 살폈다는 기록도 아울러 제시하고 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과정으로 혈처를 미리 살펴보고 혈토의 출토여부와 길흉여부를 살펴보는 의미있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영릉이 있던 자리에 이인손의 묘가 있었다는 말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영릉을 천장한 곳에 이인손의 무덤이 있었고, 이곳에서 나온 秘記에 따라 연을 날려 새로운 묘 터를 잡았다는 설화는 어디에 등장한 것일까? 현재까지 확인 가능한 내용은 지창룡 선생이 쓴『한국지리총람』에서 이와 같은 내용으로 정리한 것이『조선왕조실록』과는 다른 내용이 회자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사실은 사실대로 정리하면서 다른 재밌는 설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설화는 풍수의 스토리텔링을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면서, 설화가 갖는 장점도 적극 활용할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지나친 왜곡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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