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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답사기

식민사관과 풍수

棟載 박정해 | 2014.02.15 14:03 | 조회 23956
식민사관과 풍수


일제가 지배했던 36년은 우리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풍수는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이를 극복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식민사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식민사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피지배자의 사고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의 독립성이 결여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풍수도 그런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풍수를 인정하지 못하고 당당하게 직업인으로 인정하는데 주저하는 모습이다.
풍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의 전통문화이자 전통과학이며 전통 환경학이기도 하다. 풍수는 당나라까지만 해도 帝王之學으로 자리했다. 한마디로 황제만의 특권이었으며 비록 고관대작이라 하더라도 풍수에 의한 입지선정은 언감생심 바랄 수 없는 영역이었다.
『錦囊經』「序」에는 “開元十四年, 八月二十八日 이 법에는 왕과 제후를 葬事지내는 설이 있으니, 어찌 일반 사람들이 모두 알도록 하겠는가. 마땅히 궐내에 두고 외인에게 알려지지 않게 秘書로 하라"는 당 현종의 지시에 의해 금낭경은 접근이 불가하게 되었다. 실제로 당나라 황제의 능을 답사하다 보면 황제의 무덤 주변에 조성된 배장 묘가 있는데, 이는 당시 고관대작들의 무덤인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냐하면 비록 고관대작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묘를 풍수를 봐서 조성하기보다는 황제의 능 주변에 조성하였고, 이것은 황제의 허락하에 진행되었다. 따라서 당시의 고관대작들은 황제 능 주변에 자신을 묘를 조성하는 자체를 더 큰 영예가 없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이러한 전통은 명나라의 주원장에 고스란히 이어졌고, 그는 자신의 능을 조성하고 주변에 자신을 도와 명을 세운 공신들에게 시혜를 베풀듯이 나누어주었다. 당시 공신들의 무덤은 현재까지도 일부가 남아 전하고 있다. 그 후 영락제에 의해 북경으로 천도한 이후에 천수산 아래에 자신들의 역대 황제들의 능을 조성하게 되는데 이를 명 13능이라 한다. 이때부터 고관대작들은 묘지를 조성하는데 있어서 풍수를 도입하기 시작한다.
송나라는 ‘五音姓利’라는 이기론 풍수에 의해 능지를 선정하였고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에 이른다. 이때 주자의 상소문인「산릉의장」은 지금까지 우리의 풍수지침서가 되었다. 「산릉의장」의 주 내용을 차지한 형세풍수는 조선의 풍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전통은 원나라를 거쳐 명나라가 들어서서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명·청 시대에 형세풍수는 꽃을 피웠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려왕조를 세운 왕건의 탄생설화가 풍수에 바탕을 두고 있을 정도로 풍수는 왕실을 중심으로 자리한다. 그래서 풍수가의 위치는 王師 혹은 國師로 임명될 정도로 그 입지가 대단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비대해진 풍수는 많은 부작용을 양산하기에 이르렀고, 조선을 창건한 유학들에게 있어 불교와 풍수는 절대적으로 배척해야하는 전조의 부패상으로 자리한다. 그래서 조선왕조는 고려왕조의 풍수서를 모두 불태우고『청오경』과『금낭경』만을 남겨 풍수사를 선발하는 과목으로 활용하였다. 이때 불태워진 고려의 풍수서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어 고려의 풍수를 아는데 제한적인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유학을 널리 알리고 활용하는데 있어 풍수를 활용하였다. 즉, 효 사상을 널리 알리는 방편으로 음택 풍수를 더욱 발전시키고 풍수의 주류로 발전시키게 된다. 그 만큼 풍수는 우리민족에게 있어 주류문화로 자리하고 있었고, 절대 버릴 수 없는 중요한 사상이자 문화였다. 또한 조선의 상류층을 형성한 양반사회에 있어서도 풍수는 주류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나침은 부작용을 만들기 마련으로 음택풍수에 바탕을 둔 발복론의 풍수는 많은 부작용을 양산하기에 이르렀고, 조선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에 직면한다. 그러나 신랄히 비판하던 실학자들조차도 풍수의 부작용과 풍수가 가지는 폐해에 대해 비판을 가했으나, 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얻지는 못하였고 실학자들만의 작은 반향에 불과하였다. 왜냐하면 여전히 음택 풍수에 바탕을 둔 발복론은 더욱더 성행하였고, 비판을 가한 실학자 자신들의 조상 산소와 본인의 산소조차도 모두 풍수에 바탕을 두고 입지선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정약용처럼 자신의 무덤을 조성하는데 있어 풍수를 도입하지 않는 실천적인 모습을 보인 경우는 극히 드문 사례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선의 주류문화를 형성한 풍수를 일제는 격하시킬 필요가 있었고,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가장 우선적으로 들고 나온 전략이 미신론이었던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조상을 잘 모심으로서 자신들에게 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무력화하기 위한 미신론은 절묘한 효과를 거둔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확고한 믿음과 오랜 전통이라 생각한 동기감응론과 풍수가 잘못된 사고에 바탕을 둔 미신이었다는 것에 많은 국민들은 믿음을 거두어들이게 된다. 더 나아가 심한 배신감에 몸부림치면서 풍수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인들은 조선의 풍수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朝鮮の風水』라는 책자도 출간하였던 것이다. 일본은 조선 사람들이 풍수에 대한 믿음과 인식을 정밀히 조사하여 얼마나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을 무너뜨릴 방법을 찾고자 하였으며, 풍수를 해괴망측한 미신으로 몰아감으로서 그들의 확고한 믿음의 주체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여기에는 일본인들의 악랄한 전략이 숨어 있는데도, 우리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서 풍수를 미신으로 매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시 말해서 풍수가 가진 다양한 합리적인 특징은 알지 못하면서, 부분적이고 일부 존재하는 주술적인 부분만을 강조하여 미신으로 매도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풍수를 미신으로 매도한 일본의 전략에 매몰되어 헤어나지 못하고 속절없이 당하고 살수만은 없지 않는가? 이미 풍수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새로운 문화영역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유네스코에 등재를 추진하는 정도에 이르러 있다. 이제 풍수가 가진 장점과 활용성을 부각하고 발전적이고 현대화된 논리를 바탕으로 풍수를 더욱 발전시켜야하는 무거운 짐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 모두 과거의 악습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사)정통풍수지리학회는 앞장서서 현대화된 풍수논리를 전파할 예정이다. 함께 합시다. 아자!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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