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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위원게시판

어머니를 보내 드리며 눈물로 쓰는 일기

당진 몽산蒙山010 2345 1234 | 2012.09.24 18:16 | 조회 5532

어머니를 보내 드리며 눈물로 쓰는 일기

 

저의 모친께서 중환자실에 두달반 정도 누워계시다가 ..

자꾸만 집에 오셔서 돌아가시겠다며 나를 볼때마다 조르는 것을..

 

그래도 혹시나 하여 매일같이 조금씩이라도 나아 지는 것으로 착각하여...

누나에게 간병을 맏기고는 .. 몰래 도망을 쳐 나온게...

지금에 와 생각하니 가슴을 치도록 후회가 되고 가슴이 미어 지네요..

 

그러다가 의식을 잃은 지 5일쯤 지난 일요일..

그날은 아침부터 혈압이 떨어져 가실 시간이 점차 가까워진다길래...

 

의식을 잃은 채 나마 어머님 소원대로 서둘러 집으로 모시고자

가정용 산소호흡기를 구하려니..일요일이라 도저히 방법이 없더군요..

 

할수없이 중도에 가실걸 각오하고 라도 서울 경희병원에서 멀리 당진집으로..

어머님 가슴에 손을 얹고 엠블런스로 모시고 오는 길이 왜 그리도 멀던지..

 

그래도 그 먼길을 몇시간이나 잘도 참고 견디며 오시더니..

당신의 방에 요를 깔고 눕히자 마자..채 1분도 못 넘기고...

마치 집에서 돌아 가시겠다는 소원을 이룬듯 편안히 먼길을 떠나셨습니다.

 

병원에서 장례식장으로 바로 떠나신 것 보다야 백번 천번 낫다고 하지만..

그래도 단 2-3분도 못넘기신 안타까움에 설움이 북받침니다.

 

올해 93세의 일기로 지난 음력 7월 9일(일요일) 오후 2시...

먼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남들은 90 이 넘으면 호상이라 말들을 하지만..

100수를 하면 서러움이 덜할까 만은 ..

 

그래도 2년만 더 살았어도...95세 까지만 살아 계셨어도..하는 아쉬움에..

실로 가슴이 터질것 같은 외로움과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찍 부모를 여의신 분들께는 혹여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될 까봐..

나만 너무 슬프고 서럽다는 표현도... 마음대로 하기가 쉽지가 않더군요..

 

부모란 몸져 병석에 누워 대소변을 받아 내도..

그래도 나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다는 걸..

비로소 돌아가신 후에야 뼈져리게 느끼게 되더군요.

 

꼭 10년전인 2002년에 선친께서 작고하셨을 때에는...

그래도 어머니가 남아 계시니 외로움과 슬픔이 조금은 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마져 돌아가시니 슬픔과 외로움이 더욱 더 크게 다가 옵니다.

그래서 저의 어머니에 대한 전통적인 예의를 최대한 살려 그 나마 내 자신 위안을 삼고자..

 

전통의식의 삼베로된 상복을 입고.. 건을 쓰고..행전을 두르고..

오동나무로 된 상장을 짚고..호곡을 하며 조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식으로서 평생 제대로 못 모신 죄송스러움에...

수의도 조금 비싸지만 겉과 속이 모두 천연 삼베로 된 걸로 마련을 했습니다.

보통은 겉은 삼베로 해도 안에는 부드럽고 값이 싼 인조를 넣지만 어쩐지 께름해서지요..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 이제는 비로소 황량한 들판의 찬 눈보라속에...

가림막없이 찬바람 맞으며 외로이 홀로 서 있는 모질게 서러운 느낌입니다.

 

아마도 그런 자식이 안쓰러우셨던지..또 어머니도 자식곁을 떠나기가 한없이 아쉬웠던지..

3일장을 계획했는 데...발인날 새벽부터 웬 태풍과 폭우가 내려 발을 묶어 놓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며칠째 잠도 못자고 문상객맞이와 장례준비에 몸이 녹초가 되었는 데..

이제는 더 찾아 올 문상객도 없으니..온 집안 식구들이 장례식장에서 하루종일 편히 누워서 쉬면서..

 

나오는 음식만 차려 먹으며 집안식구들과 얘기하며 4일장으로 다음날을 준비하니..

그래도 아직은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생각에 다행히 서러움도 덜하고..

몸도 마음도 하루를 쉬고나서 발인길을 가게 되니 그나마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도 들더군요..

 

다음날은 할수 없이 어머니를 눈물로 보내드리는 데.. 그날 하루는 왼종일 어찌 그리 날씨가 좋던지..

(그 전날 폭우에 이어..발인날 하루만 개었다가 다음날엔 또 다시 왼종일 폭우가 내리더군요.)

 

떠나는 날.. 오래전에 마련해 두었던 태안군 남면 당암리 제 선산에..

뒤에서는 당암리(堂岩里)의 주산(主山)으로 이름마져 원대한 당산(堂山)이 주산되고..

앞에는 1천개의 산봉보다 1개만도 더 좋다는 면궁안(眠弓案)이 조응하는.. 가족묘역에...

 

위로는 증조부모도 계시고 그 아래는 조부모도 누워계신 바로 옆의 아늑하고 두툼한 유혈판에...

어머니도 덜 외로우시라고 먼저 가신 선친묘도 이장하여 함께 합장을 해 드렸습니다.

생석회도 산역들이 6포를 준비했다길래 30포로 바꾸어 충분하고 단단하게 회다짐을 했지요..

 

증조부모와 조부모는 오래전에 입석비를 세웠지만..

부모님 묘역에는..옆에다가 아담한 오석으로 와비를 세우면서..

거기에는 어머니가 살다가신 인생길을 노래비로 새겨 넣었습니다.

 

바로 가수 태진아가 부른 사모곡이지요.

그 가사를 보면 바로 저의 어머니가 살아 온 길을 되새기게 되지요.

 

..땀에 찌든 삼베적삼 기워입고 살으시다..소쩍세 울음따라 하늘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밤을 지샙니다...무명치마 졸라매고 새벽이슬 맞으시며...

...한평생 모진 가난 참아내신 어머니..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그리고 삼우제를 지내려 묘역을 찾아 가니..

마치 어머니가 살아계서 " 너 왔느냐"...며 반겨 주는 듯 하더군요...

제를 마치고 폭우에 상처난 묘역을 매만지고..돌아서는 발길이 아쉽기도 하더군요..

 

어차피 가신 영혼..극락왕생하시라고 멀지않은 영탑사에 49재를 올리는 데..

어머니가 살아오시며 ..참으로 복을 많히 지으셨는 지...

 

가신지 7일째인 49재 첫재(1재)날이 그래도 손쉬운 토요일로 닿아 있고...

그래서 7번의 제사에 오가는 후손들이 매주 토요일로 편하게도 되었는 데..

 

더구나 토요일은 집사람과 어머니가 불교를 믿었으니...

매주 토요일 49재에는 부처님께 극락왕생을 빌며 제를 올리고...

 

그 다음날인 일요일은 매주 제가 교회를 나가니..

하느님께 어머님의 구원을 기도하게 되지요.

 

대통령의 국상에도 보니.. 천주교나 개신교나..불교나 원불교나..

모두가 나서서 제를 올리는 걸 보니..아마도 결례는 아닌듯 합니다.

 

물론 어머니 영전에도...

목사님이 조문을 오시고 조화도 보내시고..

주지스님도 조문을 오시고 조화도 보내셨지요..

 

그러니 어머니도 생전에 선업을 많이 지어 부처님의 보살핌도..

하느님의 구원까지도 모두 함께 받게되니..그 나마 다행인듯 싶더군요..

 

7일째 접어들어 집에서 가까운 영탑사에 찾아가 49재중 1재를 올리던 날..

그날이 마침내 불교에서 1년중 한번오는 백중기도날이라서..

스님들 말씀이 고인에겐 아주 정말로 보기드문 행운이라 하더군요..

 

음력 7월 15일 백중날은 옛날부터 유구히 전해오는 불교의 4대명절중 하나로..

그날은 살아생전에 지은 업으로 인하여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영혼을..

그날 하루만은 부처님의 법력에 의하여 모두 천도하는 아주 의미가 큰 경사로운 날이랍니다.

 

그래서 그날 1재일에 보니 신도들이 수백명이 모여서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고..

그래서 제물도 겸사하여 엄청나게 많이 마련하여 어머님 영전에도 올리고..

 

모인 신도들이 함께 모두 돌아가며 영전에 재배를 올려 주시고..제사음식을 나누니..

뜻하지도 않은 행운으로 모든 신도들과 함께 그날 큰 제사를 모시게 되었지요..

 

매번 절에서 재를 지내고 나서는 어머님산소를 다시 찾아 인사를 올리며 슬픔을 달래보고..

내려오는 길에 ..절에서 싸 주는 과일과 음식을 근처의 연로한 이웃 어른들께 나눠드리곤 하지요..

그러면 이웃 어른들도 당진사람 왔다며 무척 반가워들 하시지요..

 

그러면서 때로는 동네 어른들 놀러 가신다고 찬조를 해달라고 농반 진반 말씀을 하시면...

내가 사는 동네 찬조하는 셈치고..선대가 모셔진 동네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가끔 찬조를 하지요..

그러다보니 그 동네 어른들도 내가 사는 동네 이웃처럼 반갑고 친근하니 더더욱 좋더군요..

 

아래는 사모곡 가사입니다.

 

사모곡 (思母曲)

 

1.절
앞산 노을 질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화전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땀에 찌든 삼베적삼 기워 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따라 하늘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 밤을 지샙니다.

 

2.절
무명치마 졸라매고 새벽이슬 맞으시며
한평생 모진 가난 참아내신 어머니
자나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전 빌고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

 

제 사무실에는 아버지께서 10여년전 돌아가시기 훨씬 예전인 15-6년전부터..

효를 행함에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문구의 커다란 액자가 벽면에 걸려 있었습니다..

즉,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라..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봉양코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라는..

우리가 반드시 하루도 잊어서는 안되는 교훈적 명문구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 교훈을 대부분 잊은 채로 그간 부모를 소흘히 모셔 왔으니..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입니까?.

 

그러고서 지금에와 청개구리처럼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제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스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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