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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윤 윤임의 묘

潭煊 박정해 | 2018.02.27 23:00 | 조회 460
                                       대윤 윤임의 묘

장경왕후와 문정왕후를 중심으로 대윤과 소윤으로 갈려져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 장경왕후의 아버지 윤여필과 문정왕후의 아버지 윤지임은 7촌숙질간이고 윤지임과 윤임은 8촌형제간이다. 요즘이야 사촌형제도 잘모르지만 당시는 8촌이면 멀게 인식하지 않던 시기이다. 그래서 파주 윤신 종중산에 가면 윤여필과 윤지임은 같이 묻혀있다. 

윤임(1487-1545)은 을사사화로 사약을 받고 58세에 세아들 흥인, 흥의, 흥예와 함께 죽었다. 후처 소생인 흥지와 흥신, 흥충과 아버지 윤여필은 화를 면했으나 집안은 풍지박산이 났다. 아버지 윤여필(1466-1555)은 아들보다 10년을 더 살다 갔다.

치열한 권력다툼의 후유증은 대윤 윤임이 자신의 선산이 묻히지 못하고 고양시 향동동에 자리를 잡았다. 정치란 참으로 비정하다. 권력이 주는 달콤함을 이루 말하기 어렵다. 반면에 권력을 잃고 나면 비참함이 그 보다 더 클 수 없는 것이다. 

윤임의 묘를 찾고자 지난 여름에 방문했다가 찾지 못하고 이번에 다시 방문해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엄청나게 헤맨후에 이룬 결과이다. 쉽게 생각하면 쉬웠을 일을 좀 어렵게 찾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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