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하늘(天) 인식과 風水

昞夏 박정해 | 2017.07.30 02:12 | 조회 440

                                     고대 하늘() 인식과 風水

 

상고시대 사람들에게 하늘은 해와 달, 별들이 떠있는 곳으로, 비를 내리고 천둥번개를 일으키는 자연물로 인식하였다. 요순(堯舜)시대에는 농경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홍수(洪水)와 같은 재난(災難)에 봉착하게 되었고 자연현상에 대하여 예민한 관찰을 하게 되었다. 명산과 대천, 풍우, 뇌전 등 자연현상과 자연물 등을 으로 보고 수호신(守護神)으로써 하늘을 믿게 되었다. 그 실증으로써 요()帝位에 있을 때에 중여의 후손인 희씨와 화씨에게 천지사시(天地四時)를 관장하는 세습관직을 제수하고, 하늘을 경외(敬畏)하고 하늘의 움직임을 잘 조사하여, 역상(曆象)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파종과 제초, 추수 등의 시기를 가르치도록 하였다.

()의 후계자인 순() 역시 자연현상의 관찰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공경의 대상으로 하늘을 생각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자연숭배사상은 더 나아가 천지자연과 사물에 어떤 정령이나 영력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를 경배하던 소박한 사고방식은 인지의 발달과 경험의 축적에 따라 낱낱의 자연현상을 통합하였다. 이를 체계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우주 전체를 통할하는 절대최고의 영적 존재자가 있음을 상정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자연계의 제신(諸神) 내지 우주 전체 섭리를 지배하는 신비스런 영적 존재자가 상제 또는 하늘이고, 그것을 숭배하는 신앙이 곧 경천사상이다. 천명사상은 바로 경천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하늘은 초월적 존재를 의미하는 관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SK사옥의 하늘천자-거북이 머리를 상장한다.

 

 

하늘을 의미하는 이라는 글자는 원래 인간의 머리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갑골문에는 이라는 글자가 아래 그림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갑골문에서의 천자(天字) 

 

그림에서 보듯이 이라는 글자는 본래 사람의 머리 부분을 상형한 것이다.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은 이마이고, 위가 없는 높음에 이름이고, 하나의 큼을 따름이라고 하였다. 안병주는 天字의 원뜻은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마 내지 두부(頭部)라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일본의 다케우치 요시오(武內義雄), “天字大字 위에 선을 그은 문자로서, 는 사람이 두 손을 벌리고 두 다리로 이 세계를 덮는 천공(天空)을 표시하는 것이므로, ‘은 우리들 위에 있는 상공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은대(殷代)에는 자연신으로 하늘 못지않게 조상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크게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믿음은 미래의 일을 묻는 점복(占卜)을 통해서 구체화되었고, 각종 제례(祭禮)에 신명(神命)과 더불어 조상을 배향(配享)하게 되었다. 조상의 산소를 잘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복을 받는다는 의식은 이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같은 기를 가진 후손의 발복은 조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동기감응론은 기본논리를 형성하게 된다.

주대(周代)에 이르러 하늘의 종교적 관념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문왕에 이르러 종묘제도가 성립되고 통치 질서가 확립됨으로서 천명을 계승한 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고, 하늘과 조상을 제사하는 관습은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종교적 의미에서의 하늘 관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음양의 학설로써 우주간의 현상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즉 양으로서의 하늘이 존재한다면, 음으로서 땅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과 같이 하늘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자연현상으로 존재하던 하늘 점차 신격화되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 은대(殷代)에는 종교적 색채까지 띠기 시작한다. 주대(周代)에는 점차 합리적이고 인간중심적 사고가 발달하게 되면서, 자연현상으로서의 하늘 관념을 보이게 되었다. 특히 경()과 덕()이 있어 의 실천성이 강조되는 현상을 보이게 되면서 공자(孔子)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우주만물의 운행원리로서 의 관념을 강조하면서 하늘을 자연물로 인식하는 노자(老子)의 사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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