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의 묘소에 대해

潭煊 박정해 | 2017.11.06 13:47 | 조회 245

                                윤선도의 묘소에 대해

 

 

10여년전 더운 여름에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금쇄동에 위치한 윤선도(尹善道)의 묘소를 답사할 기회를 가졌다. 아마도 수은주는 35도가 넘었으면 넘었지 그 아래는 아니라 생각되는 날씨에 산을 오르고 나니 온몸이 비에 젖은 듯 땀에 흠뻑 젖었다. 하지만 보고 싶던 묘소를 보고나니 더움은 금방 잊고 말았다.

 

윤선도의 묘를 접한 이 학인의 눈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것은 상석 뒤편의 봉분이 무너져 내린 모습이다. 다음으로 상석 앞쪽으로 살아서 가는 용의 모습이 들어온다. 한마디로 용이 기를 모아서 융결된 모습이 아니라 앞쪽을 향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이다.

먼저 어른께 인사는 드려야 하기에 묵념하고 사진 몇 장을 찍고서 뒤편을 가보는데, 입수룡이 강한 지기를 간직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자갈들과 바위들로 탈살이 덜 된 모습으로... 상석 앞쪽의 뚜렷하고 깨끗한 용의 모습과 대비된다. 용을 더 살펴보기 위해 나무를 헤치며 산속으로 들어가 살펴보는데, 용의 몸놀림이 적다. 용이 커서 몸이 가볍지 않아서 그럴까 싶다.

 

주위 사격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안산은 중첩된 모습이다. 해가 떠오르는 형태 뒤로 탐랑성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좌우 청룡 백호도 아름답기 그지없으니 과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면의 공간을 확보하는 명당은 없다. 아마도 산이 깊어서 명당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리라 생각해 본다. 짧은 순간에 떠 오른 생각은 은둔의 삶, 고고한 삶, 뭔가 세상을 등지고 학문만 하면서 사는 학자의 삶을 떠올려 봤다.

 

그러면서 빨리 집에 가서 족보를 뒤져보고 싶은 생각에 발걸음이 바빠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후손들의 삶에 대해서 살펴보고 음택과는 무슨 관련성을 갖는지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효정(孝貞,참판)은 두 아들 구(,교리), (,충청도 관찰)을 두며-구는 의중(毅中, 형조판서),-유기(唯幾, 충청도 관찰사)-선도(善道, 종손에게 양자 감, 병조참의)-인미(仁美)-()으로 이어지는데, 이석은 동생 이후(爾厚)의 아들 윤두서(尹斗緖)를 양자로 해서 대를 잇게 된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윤두서는 덕훈(德熏)과 덕겸(德謙), 덕현(德顯), 덕희(德熙) 네 아들은 두고 그들은 각자 운, , , 용 이렇게 4형제가 아들을 하나씩 두게 된다. 다시 손자로 지눌과 지승, 지범(持範,병조참의)를 두게 된다.

살펴본바와 같이 윤선도 집안은 윤선도의 4대조 효정에서 윤선도에 이르는 기간이 절정기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윤선도의 증손자 윤두서(尹斗緖) 부터는 벼슬길에 나가 입신양면하는 모습은 잘 보이질 않는다. 그것을 윤선도의 묘소에서 찾는다면, 이 학인의 생각이 너무 비약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묘소는 김두규 교수의 저서한국풍수의 허와 실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조선의 유명한 풍수학인 이의신과 윤선도의 재미있는 일화를 바탕으로 대명당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의신과 윤선도는 친척간이고 밤마다 어딜 다녀오는 이의신을 하루는 술을 먹여서 재운 후에 이의신이 타고 다니는 노새를 타고 가보니 과연 천하 명당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윤선도가 먼저 선수를 쳐서 내가 잡은 자리가 있는데, 가보자 하니 이의신이 명당은 주인이 따로 있나보다 하면서 양보를 했다는 얘기가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학인은 그것을 달리 생각해 봤는데, 고산은 많은 유배로 낙향을 되풀이 하면서 해남의 수정동(水晶洞)과 문수동(聞簫洞), 금쇄동(金鎖洞)을 왕래 소요하며금쇄동기산중신곡(山中新曲),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등을 지었다. 1651년에는 부용동에서 저 유명한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40수를 지어 고산문학의 절정을 이루게 했다. 바로 묘소가 위치한 곳이 그가 은둔하며 글을 쓰던 금쇄동 깊은 산속에 위치한 것이다. 이의신에 의해 묘소를 잡았다고 하는 것은 좀 재미있게 전해 오는 얘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윤선도는 효종(孝宗)의 능지 선정에 관여한 풍수학인이었다. 그곳이 서인(西人)들에 의해 거부되긴 하였지만, 그가 추천했던 수원의 능지는 후에 정조에 의해서 사도세자의 융릉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정조의 의해 천재일우의 명당이라는 칭찬을 듣고 있으며, 실제로 융릉은 가보면 상당히 좋은 길지인 것을 보면 그의 풍수실력은 범상치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기대가 엄청 컸던 것 또한 사실이기에 이 학인은 실망 또한 컸다고 감히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가 의도된 선택이었다고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호남의 명문가 후손으로 태어나서 남인이라는 정치적인 한계에서 많은 고뇌를 했을 고산(孤山)이기에, 후손들은 정치판에 나아가 힘겨운 생을 이어가기 보다는, 학문을 하면서 고향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삶을 살기를 원했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학인은 짧은 글로 그에 묘소에 대해서 사설을 늘어놓은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그의 묘소가 의도된 생각에 의해 소점된 것이디 때문이지 몰라도 그의 증손자 공재 윤두서와 고손자 덕희, 5세손 용으로 이어지는 문인화의 가풍이 이었진 것이 아닌가 싶다.

 

위 글은 묘소를 보고 느꼈던 바를 이 학인은 짧은 생각에 따라 적은 것으로, 해남 윤씨 가문에 어떠한 의도가 전혀 없음을 먼저 밝혀 둔다. 또한 의견이 다른 풍수인들의 의견도 겸허히 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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