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흉화복론의 발생배경과 한계성 비판

潭煊 박정해 | 2018.06.11 21:26 | 조회 508

길흉화복론의 발생배경과 한계성 비판

 

 

1. 길흉화복의 배경과 내세관

 

풍수서는 중국에서 출간되었고, 중국의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처음 풍수서가 출간된 漢代이래로 중국은 어느 한 시기도 안정된 상황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전쟁이 있었고 관리를 비롯한 지식인 그리고 수많은 국민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당시 개국과정은 전쟁을 통한 영토의 확보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불안한 정세는 안정된 삶을 희구하기 마련으로, 안정적인 삶터의 확보와 함께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는 최대한으로 높아지게 된다.

길흉화복은 풍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물론 강한 전파수단이 되었다. 단지 길지가 좋다는 정도로만 풍수서가 서술되었다면, 중국을 비롯한 한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 각국에 자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람은 이기적이고 자신의 안위와 함께 화복에 대한 관심도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높은 관심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약한 심리를 활용한 측면이 강하고 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누구도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포기할 수 없듯이 풍수서에서 제시한 길흉화복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종교의 내세관은 길흉화복의 논리구성을 음택에서 찾는 주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종교는 현실의 문제를 내세에 새로운 삶을 통해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종교의 내세관에 영향을 받은 풍수는 길흉화복론의 논리를 후세의 길흉에 영향을 미친다는 당근으로 제시하게 되었다. 바로 당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양택풍수 보다는 후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음택풍수에 집중한 것은 종교의 내세관이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였다. 효사상과의 접목이 중요하게 작용하였지만, 종교의 내세관은 풍수논리의 기본이 되었고, 차츰 효사상의 실천적인 동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2. 길흉화복의 한계성 비판

 

어느 풍수서도 길흉화복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오히려 길흉화복을 극대화한 측면이 강하고 주된 논리로 자리하고 있다. 풍수서는 당시의 관리 혹은 학자들에 의해 저술되었지만, 그들조차도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절대자에게 매달리며 본인의 안위를 확보하고자 하는데, 길흉화복은 그들의 바람을 극대화하여 풍수서속에 녹여낸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풍수서는 다양한 학자들이 모여서 학술적 토론과 격론을 통해 도출한 결과가 아니다. 기존의 풍수서를 바탕으로 어느 한사람에 의해 저술됨으로써, 저자의 주관적 사고가 바탕이 되었다. , 객관성의 담보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길흉화복의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포괄적이고 두리 뭉실한 표현을 통해 명확한 상황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물론, 길흉화복의 실체조차도 뚜렷하게 묘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현상을 길흉화복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은 길지를 선택하고 안정된 공간을 조성하는 선도적인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전적으로 길흉화복만이 존재할 수 없고, 특정의 풍수인 몇 명만이 우주만물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자연세계를 모두 이해하고 방향성을 제시할 수는 없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당시의 학자들은 자연속에서 몸으로 체득한 것이 아니라, 여러 문헌자료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논리들만을 모아서 정리한 것이 풍수서이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자신만의 주장을 담아 출간된 책들이 많다. 당시라고 해서 자신만의 주장을 마치 객관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 풍수서 인양 출간하지 않았다고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중국에서 출간된 풍수서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현재에도 풍수서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단지 특이하다는 부분만을 강조해서 어필하는 풍수이법이 있다는 것은, 앞에서 제시한 염려가 기우라고만 매도하기는 어렵다. 논리성보다는 특이함이나 독특함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과 학파 그리고 풍수서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오랜 세월 수많은 풍수서가 출간되었지만, 시대별로 검증의 잣대는 약했고 완전히 걸러지는 구조는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맹목적으로 받아들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은 세미나나 혹은 논문의 심사과정을 거치는 장치가 없었던 것은 물론 정보전달 체계의 미흡은 많은 부분에서 검증과정의 생략을 가져왔다. 현재에도 고전에 바탕을 둔 풍수이론만이 풍수의 전부라는 사고를 가진 풍수가가 있다는 점은 당시에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청대에 발행된 흠정사고전서와 흠정고금도서집성은 일정부분 거름 장치의 역할을 하였지만, 그들조차도 크게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완벽한 역할을 하였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선적으로 저자의 명성이 크게 작용하였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저자가 차지한 위상이나 벼슬의 높낮이가 완전 배제되지 않았다는 점은 객관적인 검증과정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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